- Title
- 35-남여대협 평가-대중투쟁과제
- Summary
- 1) 6ㆍ15 공통선언지지 이행 2002년은 6ㆍ18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며 한반도 전역에 민쪽대단결의식을 높이 고취시키며 Pee 하나' 라는 것을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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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ㆍ15 공통선언지지 이행
2002년은 6ㆍ18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며 한반도 전역에 민쪽대단결의식을 높이 고취시키며 Pee 하나' 라는 것을 뜨겁게
확인했던 한해였다. 분단이후 죄초로 북녁의 동포들이 남녁 땅 서울을 방문한 민족공동행사 성사를 비롯하여 남북청년학생통일
대회, 남북여성통일대회, 아시안게임 북녁선수단과 응원단 대거 참가 등 AAS] 통일축제와 회합들이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촉
진하는 과경으로 대성공리에 치뤄졌다. 특히 여성통일운동사에 길이 남을 남북여성대회를 실질적으로 성사시켜내면서 여성과 통
일의 관계, 공동선언 NY] FAIS 범여성적으로 합의하였고, 조국통일의 주체로써 떨쳐일어셨다. :
-여성과 통일의 내용적 합의 확산
여학단위에서는 6ㆍ15 공동선언 2주년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61500 여학우 선언운동을 통해 여성과 통일의 관계와 조
국통일의 FAAS 학대의 여학우과 함께 '만들어가야할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여성과 SAS 자기것화 하는 과정이 부족해 A
언운동이 명목에만 그치고 높은 활동을 통해 6ㆍ15시대에 맞는 새로운 결심과 각오로 만들어가지 못했다.
-전국에서 최초로 지역 여성단체들과 함께하는 '광주전남 여성통일 잔치'를 성사
남여대협이 지역 여성단체에 먼저 제안하고 조직하였고, 여성단체내에 6ㆍ15공동선언에 입각한 대중적인 지역여성계 통일 운동
의 한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이를 통해 상층연대가 강화되었고 각 단체별로 회원들을 직접 조직화함으로써 6ㆍ15공동선언 지지
이행을 대중들속에서 합의확산시켰다. 또한 지역내 여성통일운동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조직체건설이 높이 요구되고 있으며,
여성통일잔치의 성과를 이어서 지역 여성들을 통일의 주체로 세워나가는 사업이 요구되고있다. 여학단위의 부족점으로는 방중이
라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대학대에서 학우들을 의조직화하는 과정이되지 못하였다. 이후 지역여성통일운동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데에 남여대협이 선두에 서야한다.
-역사적 의의와 남북여성들의 통일염원을 확인한 남북여성통일대회에 남여대협 2명의 학우가 참가
급변하는 정세속에서도 남북여성들의 통일의지를 만방에 떨친 남북여성통일대회는 성사되었다. 여성통일운동사에 큰 획을 긋는
대회였다. 여학단위에서는 방북대표 선전과 후속사업으로 학내언론을 통해 방북담 기고등을 진행하였고, 부족점으로는 여학단위
자체 계획속에서 대중적이고 통크게 되지 못했고 방북대표가 대학 여학일꾼으로 적극 조직화 되지 못하였다.
-이북사회와 이북여성 바로 알기 사업이 더욱 많이 요구된다.
2002년은 AAT 전역에 여성통일운동사에 새로운 역사를 FSS 의미있는 한해였다. '여성과 통일'을 통해 6ㆍ15공동선언 지지
이행하는데에 여성들이 주체가 되었고 줘선두에서 투쟁하였다. 이후에는 결심과 각오를 높여 구체적인 실천으로 5만여학우 10
만청춘 그리고 전 민중이 주체가 되어 조국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만들어가야할 것이다.
기반미자주화 투쟁
민쪽자주의 RSS 높이 들고 미국대 민쪽의 싸움에 큰 승리를 차지하였다.
미선이호순이를 장갑차에 깔아 죽인 살인미군처벌 투쟁이 전국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남으로써 반미운동이 생활화, 대중화되었고
촛불시위, 인터넷 시위 등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직접적인 행동전으로 표출되었다. 살인미군한국법정에서 처벌, SOFAQA 개정,
부시공개사과, 주한미군 철수등의 TES 통해 민쪽의 자존심을 짓밝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본질을 민중들 스스로
가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반미생활문화운동
부시방한반대투쟁과 함께 미제상품, 상점 불매운동을 벌여내었다. 일상에서부터 반미를 생활하하고 의식회하려는 과정이 되었다.
-살인미군처벌투쟁
전체 대오와 함께 청년학생들이 가장 선붕에 서서 투쟁해왔다. 조선대학교 총여학생회에서 개강과 동시에 사진전시, 서명운동,
AAAS 통해 학내 의식흐름을 꾸준히 장악했던 모범과 조선대 상대여학생회 ALS] 거점선전을 벌여 여학단위가 선두에서
-자기대중책임지기 위한 활동이 있었다. 광주대학교 SPIE 신문광고.모금운동을 FHS 교수님들과 함께 해내었다.
. 남여대저에서는 지역적 차원의 투쟁에서 의식화를 극대화하기 위한 소복시위를 조직하였고, 광주전남여성통일잔치 준비위 차원
의 신문광고와 집회공간에서 여성단체들과 함께 행동전을 조직하였다.
-남여대협 기지촌 활동
대학별로 핵심발굴육성과 주한미군철수의 각오를 가지고 기지촌활동을 많은 성과를 남기며 진행했다. 이전시기 전남대가 꾸준히
진행해은 성과를 남여대협에서 전체화하였고, 전체화의 성과로 각 대학에서는 기지촌활동이 핵심사업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재대
기ㆍ기층일꾼조직화로 여학일꾼역량이 마련되었으며 기지촌활동의 BAYS 만들게 되었다. 펫벌읽기와 기활학교를 통해 사전의식
화를 진행하였고, 전남대와 광주대가 다비타의 집으로, 조선대가 새움터로 나누어 각각의 성과와 한계를 비교분석할 + 있게되
었다. 주한미군범죄와 기지주변의 성문화 AGS 직접 체험하면서 미군기지철수의 의지를 높이는 활동이었다. 이러한 Asp} 윤
금이 언니 10주기 투쟁으로 이어져야했으나 지역과 대학내 투쟁을 만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과제로는 송정리 미군기지 반환투쟁과 더불어 기지주변실태와 성문화 현황을 기반으로 여학단위 자체의 활동과 투쟁을 계획해
기지주변주민들과 지역주민들이 만들어가는 지역적 반미투쟁의 근거지로 상승발전 시켜내야한다. 또한 살인미군처벌투쟁과 함
주한미군범져를 날날이 알리는 투쟁을 일상적으로 전개하자.
9)반일자주화 투쟁
고이즈미 방한을 시작으로 한미일 군사공조의 음모, 역사왜곡, 자위대 파병 등 군국주의 부활을 피하며 일본은 군사대국화의 움
Ads 보이며 한반도 내 전쟁책동의 SES 그대로 드러내었다. 이에 미일공조를 끊고 군국주의 부활음모 반대, 전쟁책동분쇄,
역사바로잡기 등 민족자주를 위한 투쟁을 중심되게 펼쳐왔다.
-500차 수요집회
92년 1월 8일부터 시작해서 2002년 3월 13일에 결쳐 위안부문제 완전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500회를 맞이하였다. 3월 개강과
함께 여성주간을 선포하고 기나긴 .기간동안 끊임없이 사죄배상을 요구했던 수요집회의 의의, 위안부, 할머님들의 투쟁소식들을
신문, 유인물을 가지고 학우만남을 하였고,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AVS 위한 서명운동과 나눔
, 의 집 후원 모금운동도 벌여냈다. 모범으로는 전남대 총여학생회에서 개강과 USS 같이해 떡잔치화 함께 서명운동을 대중적으
로 Aye HS 점은 개강시기라는 객완적 조건도 있으나 남여대협의 상경투쟁조직화 Yor 빠르게 제출되지 못하여 광주대
학교 총여일푼들만이 서울상경투쟁에 결합하였고, 학내/집중상경투쟁에 많은 학우돌을 조직화하지 못하고 선전의식화를 진행하
는 정도였다.
-고이즈미 방한 투쟁, 나눔의 집 방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강연회 Se 전행
-지역 태평양 유족회와 지역여성단체와 공동연대투쟁으로 상승 발전 요구
10년이 넘게 진행되어온 일본군 위안부 퍼해자 투쟁을 이제는 '진부한 투쟁'이 아니라 우리대에 반드시 끝장을 내야한다는 각오
로 임해야한다. 올한해 진행했던 의식화와 할머니들과 지속적인 연대, 대학과 지역자체의 투쟁으로 일회성이 아닌 일상적인 투
' 쟁으로 AS 발전 시켜야한다.
4)여성빈중 생존권과 연대투쟁
-여성노동자 투쟁 및 연대투쟁
ASS 맞이하여 여성주간을 선포하고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사업을 펼쳐냈다. 여성 기본권리와 참정권 쟁취 Fae 통해 근
현대 여성해방투쟁사의 시초인 38 여성의 날의 의의를 일려내고 여성으로 태어남을 축하하는 공간이 되었다. 주요방도는 선전
의식화를 통해 학내의 흐름을 가져갔다.
일상적인 연대사업 내용마련과 연대투쟁을 가져가지 못하였다
지역여성노조와 연대하여 학내 용역 여성 근로자와 최저임금 실태 조사에 대한 고민은 있었으나 고민으로만 그치게 되었다. 대
학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의 연대, 여성노조와의 연대등 학대에서부터 지역의 두쟁까지 실천적으로 고민하자.
-여성농민 투쟁 및 연대투쟁
30만 농민대항쟁을 사활을 걸고 두정한 한해였다.
도여농학연추회의를 건설로 봄, 여름농활을 준비하였고,30만 농민대항쟁의 Fass, 여성농민의 처지와 조건, 농촌사회의 심각한
가부장성 현황, 농활성폭력방지 위한 신고센터 설치 및 교육 SS 함께 공유하고 결의하는 자러였다. 연추회의공간에서 각대학
과 각군의 주직현황과 농활준비현황, 분반황동계획과 내용등을 공유하는 사전만남이 진행되었다. 농활의 모범은 광주대학교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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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회와 인사대 여학생국에서 여성농민 분반활동을 짜임새있게 가져가고 핵심을 발굴과 후속사업을 진행했던 모범이 있다.
또한 우리쌀 지키기 광주전남 여성실천단을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차원에서 구성하였고, 30만 농민항쟁을 지역여성들의 투쟁으로
만돌어갔다. 활동으로는 서명운동, 모금운동, 거리선전전을 진행하였다.
-여대생 노동권 확보와 여성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FAS 만들지 못했다.
여성민중생존권과 연대투쟁에 있어서는 연대사업 주체를 명확히하고, 일상적인 1:1:1:1 연대로 학내에서부터 지역까지의 실천적
인 투쟁이 되어야 한다. 연대단체와의 일회성, 사업적 연대가 아닌 혈연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초청, 방문사업을 진행하고
요구성이 있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학내에서부터 의조직화를 적극적으로 하여야겠다.
8반가부장제 투쟁
-반성쪽력운동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교수성폭력뿌리뽑기연대회의>와 <대학내성폭력근절을위한교수모임>이 결성되어 교수 성폭력에 대한 기
자회견 등 공동행동을 취하며 대학과 WY] 성폭력 대책마련을 요구되는 등 대학내 교수와 학생간의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
A 드러난 해였다. 전여대협차원으로는 학내 반성폭력 학칙 제개정으로 학내 Yeas 근절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학칙 제
ABA 대한 움직임이 누드러졌다. 전국대학생성인식 설문조사를 통해 전국대학생들의 일반적인 성인식 BSS 마련히였다
그러나 대학 자체 학칙에 대한 학내 의식흐름 파악, 연구분석, 선전의식화등을 진행하지 못하였다. 대학대 올바른 성문화 aaah
양성평등한 대학문화 만들기 과정에서 생활문화운동과 같은 대중사업과 함께 학칙개정의 구체적이고 꾸준한 학내의식흐름을 만
들어내야한다.
-성매매 근절 투쟁
2000년에 이어 두차례에 Bl 군산 화계참사사건을 통해 우리사회 성매매의 심각성이 그 어느해보다 심각하게 드러났고, 성매매
방지법 제정투쟁을 중심되게 펼쳐냈다. 전체 여성단체와 여성계에서 성매매 실태조사를 활발히 벌여대었고, 법제정 투쟁을 적극
적으로 벌였다. 이로인해 2000년 군산화제사건에 대한 관결이 정부차원의 손해배상이라는 성과를 거두었고, 성매매 근절을 위한
투정은 더욱 활발히 펼쳐질예정이다. 여학단위에서는 기지촌 활동으로 우리 사회 성매때의 심각성과 성매매에 대한 Bsa 인식
들을 바로 잡아가는 실천력 있는 BES 가져갔다. 지역에서는 여성단체돌과 함께 성매매근절을 위한 각종 캠페인과 BS a
행하였다. VEAL 학내외에서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두쟁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면서, 지역의 성매매 근절을 위한 구체
적인 YES 여성단체돌과 함께 SERA, 공동실천 해나가야할 것이다. 그러면서 근거리 지역의 성매매 근절 투쟁에 Gago
로 연대투쟁을 만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호주제 철폐를 위한 생활문화운동 다양하게 진행
성안쓰기 운동,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 HEC, 스티커설문사업, 선전의식화
CMe 양때센게뿌정
양대선거를 통해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실현에 대한 많은 고민을 던져준 한 해였다.(박근혜 지지론/ 장상총리부결/여성당선현황/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여성 1순위로 9인 당선 등)
-선거투쟁
자체적으로 여성의 정치세력화의 의미, 양대선거 의의, 선거 투쟁의 중요성을 깊이 토론하고 논의하지 못함으로 인해 우리의 준
비정도가 높지 못했다. 대선여성연대가 구성되어 지역여성연대를 이루어 주요후보 여성정책 비교 분석, 서포터즈 모집, 여성유권
ASSESS 대학내와 시내거점에서 벌여냈다. 아쉬운 것은 AAG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와의 간담회, 우리후보지지지원사업등
을 벌여내지 못한 한계가 있다. 올해 양대선거투쟁의 Bas} 한계, 교훈지점을 잘 돌아보며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한 us =
이고 새로운 정부의 여성정책이 잘 Aas 수 있도록 감시하고 함께 실천해나자 0
현황
1년사업의 SHE <여학단위의 ARS 생산해내고 체계를 만들어 여학생운동 대중화 실현하자>였다. 남여대협 각 대학의 So
학생회와 여학생운동 현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SEs] 못하다. 총여학생회가 있더라도 단위까지 체계가 마련되
AL 못한 상황에 여학단위 기층이 많이 부쪽하고 미약한 상황이고, 또는 종여학생회만이 존재하는 대학도 있었다. 대학마다 전일
적인 체계나 구조가 미약함으로 인해 일꾼 재생산 또한 어려운 상황이어서 대학마다 일꾼의 숫자가 깨우 적다. 구체적으로는 대
HAR 있거나 대표자 S| 간부 1"2인 정도 있는 Ko] 대부분이며 대표자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APS] 여학생운동을 처음 접
하거나 경험이 짧다. 그래서 투쟁과 사업의 경형이 부쪽하고 전반적인 사업작풍에 있어서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또한 사상성과 전문성이 부쪽하였다. 그로 인해 전체 변혁운동과 여학생운동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하여 기간의 여학생운동에
대한 평가에 근간해 일꾼재생산, 기층건설, 핵심일꾼 발굴과 Fy, 전일적인 조직체계 토대 구축이 요구되는 것이 157] 남여대협
의 총적방향이었다. :
총평
여학생운동일꾼들 속에서 가장 고민이 많고 높이 요구되는 것이 조직사상운동이다. 경험과 이론이 부족함으로 인해 여학생운동
이 나의 삶에 고민을 던져주고 자아를 찾아가는 BIS 되었지만 모른다, 부쪽하다는 고민에서 더욱 절박하였다. 일꾼의 부쪽함
과 불안정한 조직체계로 인해 여학생운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의 장벽이 너무 높게만 보였던 것이 기간의 모습이었다면 변혁
운동과 여학생운동의 관계 모색, 자주적 여학생운동론의 이해, 여성해방의 명확한 상과 경로에 대한 고민이 많이 표출되었던
2002년은 주,객관적 어려움보다는 주체가 튼튼해야한다는 주체역량강화가 과제였다.
이에 그간 높이 요구되었던 소모임을 실질적으로 건설해냄으로써 일꾼배가, 재생산 구조의 단초를 전대학이 마련하였다. 소모임
건설은 향후 여학생운동대중화의 장/단기적 전망을 세울 수 있는 소중한 성과로 남을 것이다. 이것은 여학운동을 통해 UTS
스스로가 삶의 주체, 사회의 주체로써 살아가자고 결의했던 여학운동에 대한 크나큰 자부심과 결의로써 만들었던 것이다. 모범.
으로는 광주대학교 소모임이 내용적 부족함은 있었지만 소모임성원 Ado] 조종례를 진행하고 결속력을 높이기위해 다양한 활
동을 진행하였고 총여와 대학의 사업과 투쟁에 결합함으로써 현재 대학운동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조선대학교는 총여에서부
터 단대여특위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소모임을 건설하여 조직하였다.
소모임 건설을 통해 조직체계마련과 일꾼재생산구조를 마련해낸 그 각오와 자신감에서 성과와 교훈을 잘찾고 이후 여학생운동
대중화의 초석으로 SEs] 다져가야한다.. '
아쉬운 점은 장단기적은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안정적이고 전일적인 체계구축을 모색하는데 YS 쓰지 못하였다.
장단기적인 지역의 목표와 구도는 마련되었으나 그에 맞는 대학 여학생운동의 계획표가 마련되지 못함으로 인해 어디에,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학 여학생운동의 명확한 진단과정에서 현황을 잘 요해하고 발전상을
그려내는 총적좌표 종노선을 반드시 수립해야한다. 하여 1년의 ABs} 장기적 전망의 구도속에서 집행, 점검, 평가총화로 점진적
이고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와아한다.
핵심일꾼 몇몇의 고민이 탁상공론에만 그쳐 실천력있게 투쟁하며 전 대오, 여학단위의 운동대중화를 일으키는데 일정 소극적인
자세도 있었다. 이러한 소극성은 논의와 논쟁보다는 실천력있는 투쟁, 일꾼혁신운동 생황화로 극복해야한다.
여학생운동의 투쟁과제가 현황에 비해 광범위하게 보여진다. 그러나 장/단기적 계획속에서 조직사상운동의 주체를 명확히 세우
고 향후 발전전망을 구체적으로 모색해나가자.
1. 사상적 과세에 데한 평카
1) 전문성 강화를 위해 다분히 노력하는 과정이었다.
이전 시기에는 여성정세의 변화추이나 쟁점에 대해 깊이있게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사안과 형태가 복잡다단하고
방대하였던 만큼 자료확보나 정보를 알 수 있는 So] 많지 않음으로 인해 몰라서 못한다는 것이 기존의 모습이었다면 이러한
FAS 절심함에서 전문성강화의 요구로 많은 LAS 하였다. 일꾼들 개별로 우리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변
화와 양성평둥의 사회화, 가부장제, 사안별 여성문제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자료동을 통해 여성정세를 인식하고 여학운동의 방
향에 대한 BS 고민이 있었다. 모범으로는 전남대학교에서 매시기 여성에 대한 화제와 변화되는 정세를 일상적으로 선전의식화
함으로써 학우들의 의식전환사업을 꾸준히 진행하였다. 조선대 상대 여학생회에서는 화장실신문 제작으로 여학생회의 사업대용
과 투쟁내용 ASS 제때에 하며 단위여학우들의 의식전환사업을 꾸준히 벌여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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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으로는 변화하는 정세를 개인별로 인식하는데 그쳤다. 조직생활의 공간에서나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정세에 관한 의
견교환, 논의와 토론을 활발히하여 주체의 주동적인 결의를 내오는데 부족했다. 이러한 기층의 부족함을 남여대협에서 지도사업
이나 개별 일꾼만남을 통해 사업하는데에 한계도 있었다.
향후에는 매시기 조직생활의 공간에서 주체를 설정하고 일상적, 집단적으로 주객관 경세, 투쟁과게에 대해 자기것화 하여 투쟁
에 대한 일꾼들의 결의와 BIS 높여야할 것이며 남여대협에서는 이를 담보하는 공간을 적극 마련하자.
2) 확습은 조직과 개별일꾼들의 결심 문제이다.
기간 학습과 Bese] 내용마련에 어려워하는 과정이었다면 87] 전여대협에서 꾸준히 학습>교양자료둥을 제출함으로 인해 학습
내용마련에 대한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상반기 높은 열의와 열정으로 학습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조직생활과 회의가 안정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FAY 부재나 있더라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학습이 가장 먼
저 깨지게 되었다. 실제 계획마저 수립하지 못한 기간이 많았고, 계획이 있더라도 꾸준히 진행되지 못했다. 문제는 학슴에 대해
무작정 요구만 높았지 실제 학습을 치열하게 하기 위한 조직과 개별일꾼들의 결심이 높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학습은 혁명가의
첫째가는 임무이다'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지만 진행되지 못했던 것은 결국 결심의 문제이다. PS 사업과 Hee 투쟁일정 속
에서도 꾸준하고 치열하게 해나가기 위해서는 학습에 대한 부족함과 열망만으로는 어렵다. 개인과 조직이 학습에 임하는 관점과.
AAS 바로잡아 기풍을 세우고, 책임있는 TAS 선정하여 치밀하게 준비하고, 시작부터 마칠때까지 전체성원모두가 매시기 학
습에 대한 내용과 임하는 과정까지에 대한 평가를 통해 성과와 한계를 분명히 하여야겠다. |
JAS
전체변혁운동에 Be 이해와 청년학생으로써 높은 책임과 역할 요구
학생운동 내 여학생운동의 자리매김과 자주적 여학생운동의 방향과 DISS 풍부히 하자.
사람중심의 사상에 기반하여 혁명적 동지애를 높이 구현하자.
4)자여론 보강
자주적 여학생운동론에 기반해서 복잡하고 간고한 여성문제에 대한 연구, 고찰과 여학운동의 전망을 내와야함에도 불구하고 전
여대협의 계획이 진행되지 못했다. 자주적 여학생운동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속에서 현재의 여학생운동의 발전방향과 운동대중화
과제들을 기층에서부터 연구하여 마련된 USS 전여대협 차원으로 모아서 자여론 보강을 하여야겠다.
2. 조직적 과제에 데한 평가
1) 장기적 전망과 계획 수립
2002년 각 대학의 장단기적 계획이자 총적좌표인 총노선이 부재했다. 알차게 짜여진 계확이 없음으로 인해 전일적인 체계구축,
조직확대강화, 기층담보, 핵심발굴육성과 일꾼개개인에 대한 전망수림이 계획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현재 우리 대학의 조직역
량과 현황에 비춰 한해의 목표와 계획 속에서 대중사업을 적절히 배치하고, 매시기 조직 확대강화, 일꾼발굴육성을 해야함에도
Ago] 없다보니 그때그때 해치우는 식의 사업작풍으로 Fs 성과를 많이 찾지 못했다.
그러한 가운데 조직역량을 대중적으로 구축하려는 VSS 있었다. 목포대학교 총여학생회 희장님이 메일사업, 확대운영위, 때시
기 Ast 투쟁의 과정에서 과회장님돌과 직접 연락하여 총여학생회의 사업과 계획을 알려내고 과여부장을 적극적으로 제안하
는 모범이 있다. 전남대학교에서는 새내기, 과여부장, 기충단위와의 학습을 제안하고 직점 조직하여 여학생운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여성제에 적극적으로 결합시켜냈으며 내년 과여부장을 직접적인 지도로 세워가는 성과가 있다.
향후에는 대학의 조직역량과 현황, 일꾼들의 준비정도를 면밀히 까악하고 장단기적 계획속에 총노선을 반드시 수립하고 남여대
협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업해야한다.
2 일꾼혁신문동
학습의 혁신, 투쟁의 혁신, 생활의 혁신 등 생활, 학습, 투쟁에서 운동가로써의 드높은 자각을 통해 혁신과 비약하자는 것이 목표
였으나 제출만 되었지 시기별로 개인과 조직이 무엇을 혁신하고 비약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인식이 되지 못했다.
혁신은 제자리결음이 아닌 명확한 현황에 기반한 근거로 한층 비약하는 것이다.. 철저한 조직생활과 일상에서 자비상비를 일상
화하여 개인과 조직의 과제를 함께 공유하고, 혁신해가야 한다.
3) 새내기 사업
전 단위 소모임건설로 여학생운동대중화에 총매진했던 한해였다. 소모임 건설과 운영을 통해 여학단위에 묶인 새내기일꾼들로
일꾼배가, 역량마련이 되었으며 재터에서부터 선거투쟁까지 새대기일꾼들이 결합되어 전망을 가지게 되었다.
아쉬움으로는 처음이라 정형이 없고 대용적 준비정도, 체계적인 학습이 부쪽하였다.
올해의 경험과 교훈으로 2003년 새터를 시작으로 새내기사업에 목적의식적으로 임하여 여학생운동 대중화에 힘쓰자.
4) 골간단위와의 사업
여학생운동은 여학일꾼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전체대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해나가야하는 폭넓은 운동이다. 여학운동
의 대상은 먼저가 여학일꾼이고, 여학단위가 주체가 되어 Qu 무지를 깨부쉬야한다. 이에 전여대협에서의 활동이 많은 한해
였다. 한총련 전대오 속에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사업해가는 과정이었다. 대의원대회, 통신, 집중일정 SS 통해 제출함으로써 전
여대협의 사업과 투쟁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되고 기층에서부터 핵심돌까지 논의 토론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여대협
의 고민이 기층여학단위에서부터 지역여대협까지 전일적으로 되지 못한 부분을 극복해야한다.
-골간단위와 함께 여학단위의 내용과 투쟁을 적극적으로 사업하자.
여학일꾼 몇몇이서 해내기에는 턱없이 부쪽하다. 언급됐던 것처럼 여학운동은 여학일꾼들만의 사업과 투쟁할 내용이 아니다. 기
층 과학생회, 단과대, 총학생회까지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교양하여 여학생운동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이고 전체가 함께 투쟁
할 수 있게 해야한다. 대의체계(중운위, FEA, 전학대회)를 통해 사업하는 것과 함께 총여학생회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단위
로 직접 하방사업하고 일꾼들 속에서 함께 해나가야한다.
또한 골간단위에 있는 여일꾼들과 밀접하게 자주 만나 총여학생회가 자기조직임을 인식시키고, 여학운동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자. 예를 들어 대학전체일정 공간에서 여일꾼돌과 WAS 수 있는 SAS 제출 또는 OOF 여일꾼모임을
통해 대학내 여일꾼들의 단합과 Ads 높이는 자리에서 천목도모와 함께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여 총여학생회와 여학운동
에 행동과 참여 공간을 적극 마련하자.